아오모리 여행기 # 4~5일차 - 마지막 저녁과 입국, 그리고 에필로그
원래는 하루에 한 개씩 포스팅을 쓰려 했지만, 분량 조절 실패로 날짜들이 지 맘대로 겹쳤다. 근데 사실 마지막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한 시간 정도 산책한 게 여행의 다라서, 큰 내용이 없다. 그래서 남은 4일 저녁과 5일 하루를 묶어서 하나의 포스팅으로 작성했다. 물론, 내용은...
사실 규제가 혁신에 미치는 영향 같은 주제들(가령 규제의 정당성을 논하는 전통적인 연구들에서부터 규제가 가지는 비효율성, 즉 정부실패와 기술혁신간의 관련성을 논하는 연구들까지)은 학부, 석사과정에 있던 각종 세미나 수업을 거치며 한 번씩 접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만 해도 부처별 규제 건수나 규제의 성격에 따라 분류하는 등 각종 조작적 정의로 규정된 변수 중 하나로만 접했던 ‘규제’를 실제 연구개발을 하며 맞닥뜨리니 엄청나게 강력하다는 너낌을 받았다. 애매하게 만들어진 규제 하나로 4차산업혁명 시대의 신성장동력이 될 기술혁신이 완벽하게 차단되는 느낌이랄까(사실 내가 걱정할 일도 아니고 어련히 똑똑하신 분들이 다 해답을 찾아주실 것인데 왜 나대는지 좀 쪽팔림;) 여튼 아주 포장하여 말하자면 현장과 제도의 간극을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간극이 더욱 크게 느껴져갔던 것은, 시간이 지나 경험이 쌓였으며 궁극적으로는 중간관리자 역할을 해 주시던 분이 퇴사하시면서, 자격미달인 내가 꽤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매니징하는 역할을 맡으면서였던 것 같다. 일이 기한 내에 굴러가도록 하기 위해서 신경써야 할 부분은 옆에서 관망하던 것보다 상상이상으로 훨씬 많았는데, 그 과정에서 제일 어려웠던 점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시대가 점점 융합이 당연한 방향으로 흐르다못해 휴먼ICT융합학과, 스마트운행체공학과, 글로벌바이오메디컬엔지니어링 같은 기괴한 융합전공학과가 생기는 등 다학제적 연구개발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다양한 분야의 책임자 혹은 실무진 분들은 고유의 전문 분야가 있는 분들이셨기에 그 분야의 언어로 말씀하시는 것은 당연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알아듣는 것이 선행이 되어야 할 것인데,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여러 전공을 두루 섭렵(?)하다보니 말귀가 조금 트여있었다는 점이다. 약간의(사실은 좀 심한) 오타쿠 기질이 있어서 나무위키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조금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 근간에는 내가 생각보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이유가 있는데,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식이나 경험을 축적하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어느 분야라도 손톱 때 만큼은 아는 척을 할 수 있었고, 그런 부분이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을 함에 있어 꽤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이와 관련이 있다면 있을 수도 있는 것이, ‘임기응변에 능하다’는 말을 참 많이 들어왔다. 자매품으로 눈치가 빠르다거나 초반 이해가 빠르다거나(물론 도착점에 가면 맨 뒤에 있음) 하는 말들도 많이 들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나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넓고 얕게 무언가 항상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확장성’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사실 고백하자면 저런 생각은 한 10% 비중 정도 되려나 모르겠다. 전년도 리트 풀어보니 점수가 생각보다 잘 나와서 온 게 50%는 될 듯ㅋㅋ 리트 짱짱시험! 근데 이것도 결국은 어려서부터 다방면에 관심이 있었다보니 책도 많이 읽고 해서 뭐 이것저것 도움이 많이 된 듯 함.
위에서 확장성 어쩌구저쩌구 내뱉어놓고 전문성을 논하는게 조금 웃기지만, 전문성에 대한 욕심도 매우 컸다. 박사과정 당시 남들은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겠지만 괜히 나 혼자 찔려서 문돌이 출신이라는 얘기도 잘 안 했었고, 뭔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잘 안 풀릴 때마다 나는 순수혈통이 아니라 전문성이 없어서 잘 못하는 것이라는 이상한 생각에 빠지곤 하는게 너무 스트레스였다. 유사PM을 맡으면서 사람들을 만나도 괜히 소심해지고, 무언가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서 많은 서터레스를 받기도 했다. 요새 아무리 그 위상이 하락했다지만 그래도 전문직인데, 어디가서 허세를 부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심하지는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로스쿨 진학을 결심한 계기 중 꽤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 같다.
초심을 다지자고 시작한 글쓰기가 요상한 방향으로 흘렀지만; 종합해보면 나는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싶어서 이 곳에 오고자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한 학기와 방학 한 번을 보낸 지금까지는 내 선택에 만족한다. 서른이 넘어 다시 학생이 되었음에도 걱정보다는 축하가 살~짝 앞서는 주변 분위기도 그렇고, 새로운 지식을 채워간다는 점도 그렇고, 배우면 배울수록 뭔가 행동의 기준(?)이 생기는 것 같은 기분도 그렇다. 잘 마무리하여야 좋은 기억이 되겠지만, 그런 걱정은 차차 하는 것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준비를 한다는 것이 (나는 별로 힘든지 몰랐는데) 힘든 일이라고들 많이 이야기하더라. 물론 나는 학부가 그리 뛰어나지도 않으며 매 번 전공보다는 다른 데 관심을 두다보니 학점도 거지같았고 살아오면서 법과 관련된 그 어떠한 활동도 한 적 없었기에 좋은 학교에 진학하지는 못했고 그래서 그리 힘들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근데 이렇게 얘기하면 힘들게 우리 학교 온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제가 많이 무뎌서 별로 안 힘들게 느꼈을 수도 있읍니다; 양해바람). 그래도 그 땐 정말 재밌게 준비했었던 것 같다. 공부하다 또 싫증나면 하나씩 써 봐야지 생각하며 오늘은 일찍 자야징~~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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