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로스쿨 : INTRO
어쩌다 보니, 올해 초부터 법학전문대학원이라는 곳의 학생이 되었읍니다..; 도입된 지가 벌써 12년째로 아직까지도 현대판 음서제라가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로스쿨이라는 곳에 빽도 절도 없는 나같은 놈이 어떻게 입학할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삐빅 음서제는 없었습니다), 30...
건물로 처음 들어서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분위기였다. 형광등이나 백열등에 익숙한 나로서는 어둑어둑한 건물 내 분위기가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다. 이미 인터넷 검색으로 사진들을 본지라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복도에는 전기불 대신 그윽(?)한 분위기의 석유 램프들만 가득했다.
우리 말고도 일본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 같았다. 체크인을 하면서 보니 주인장 아재께서 꽤나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시더라. 각종 매뉴얼들도 챙겨주셨는데 꼭 필요한 내용들은 영어로 작성되어 있었다.
우리 방은 2층 끝쪽이었는데, 겨울은 비수기인지 날을 잘 고른건지 전체적으로 사람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 추운 겨울에 창이 양 쪽으로 나있는 끝방을 준 데는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온천하러 가기 가까운 방이었다.
방에 짐을 풀고, 온천이 우째 생겼는지 궁금해서 한 바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너무 추워서 나가기 싫었지만, 그래도 놀러 왔으니 이런 날씨에 바깥을 돌아다니지 하는 생각에 방에 준비되어 있던 유카타를 입고(…) 나갔다.
한바퀴 쭉 돌고 구경도 하고 온천도 하고, 문득 아까 체크인할 때 주인장 아재가 해주셨던 말이 기억났다. 밥은 오후 6시부터 8시 사이에 아무 때나 와서 먹으라고. 왠지 시간 못 맞추면 얄짤없을 듯 싶어 6시 땡 치자마자 바로 밥먹으러 갔다. 밥은 1층에 따로 식당이 있다고 하여 내려갔는데, 일본어로 써있다 보니 이 방 저 방 다 열어보다가 결국 발견했음!
이 저녁밥이 아마 그 때 여행 중 먹었던 밥들중에 제일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 불에 구워준 뭔지 모르겠는 생선도 넘나 맛있었고, 나베도 맛있었고, 된장국도 맛있었고, 뭐 그냥 다 맛있었음! 밥과 된장국은 위 사진 뒤쪽에 보이는 밥통 및 국통에서 계속 갖다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밥을 세 그릇인가 먹음ㅋ
그렇게 쳐먹었으니 당연히 졸리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형광등이나 백열등이 아닌 석유램프 불빛은 진짜 잠이 잘 온다. 밥 먹고 올라가자마자 엑스펠리아르무스를 한 대 맞은 듯이 늘어져서, 할 게 없을까봐 걱정했던 것들은 다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평소 한국에선 새벽 두세시까지 잠이 오질 않아서 난리였는데, 이 날은 저녁 9시가 채 되기 전에 잠들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한 껏 자고 정말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이번 여행의 목적을 달성했다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숙면을 취하고, 온천 여기저기 조금 기웃거리다 아침을 먹으러 갔다. 아침도 역시 같은 곳에서, 같은 식의 메뉴로.
저녁 때 먹었던 생선보단 별로였는데, 그래도 또 밥 세 그릇 해치움!
밥 먹고 띵까띵까 하다가, 계획에는 없던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이 두메 산골은 하루에 오고가는 차 시간이 정해져 있는지라, 시간에 맞췄어야 했는데… 차 시간을 잘못 알아서 여유롭게 준비하고 나가니, 여직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니지노코에서 나가는 버스가 없단다. 지금 나가도 니지노코에서 쿠로이시로 움직일 방법이 없다며, 택시를 불러주겠다고 한다. 굉장히 당황했으나 향후 일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이용했다.
기사아재는 참으로 쾌활해 보이는 분이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려고 시도하시다가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조용히 약 40분여를 달렸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의 불신이 있어서 구글맵을 켜고 이 기사 아재가 정말 제대로 된 길로 가고 있나를 의심하며 가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왠 이상한 곳에 멈추는 것이다. 기다리라는 말도 없이 손님을 내팽개치고 내리는 아재의 모습에 매우 불안했다. 어디로 팔려가는 건 아닐까, 우리 이제 망했다며 한참 쫄아있었는데 기사 아재가 저 멀리서 품에 사과를 안고 뛰어오고 있었다. 뒷문을 열더니 사과를 던져주면서, 또 아무 말도 없이 다시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모셨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잘 도착했고, 의심했던 나만 굉장히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비록 나는 사과를 못 먹는 이상한 사람이라(알러지가 있다) 직접 느끼진 못했지만, 마음으로나마 굉장히 감사했다.
택시를 타고 온 구로이시역에선 다행히 바로 기차가 있었다. 고난센을 타고 히로사키로 가서, 히로사키에선 다시 JR열차(맞나?)를 이용했다. 역시나 창 밖에선 신나게 눈이 오고 있었고, 아오모리시에 내려서도 눈은 계속되었다.
너무 길어서 쓰기 귀찮으니까 다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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