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로스쿨 : INTRO
어쩌다 보니, 올해 초부터 법학전문대학원이라는 곳의 학생이 되었읍니다..; 도입된 지가 벌써 12년째로 아직까지도 현대판 음서제라가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로스쿨이라는 곳에 빽도 절도 없는 나같은 놈이 어떻게 입학할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삐빅 음서제는 없었습니다), 30...
10시 언저리 비행기였는데, 아침 8시부터 빨빨거리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환전한 돈도 찾으러 갔고 신청해둔 포켓 와이파이도 찾으러 갔다. 아침도 못먹었으니 밥도 먹어야겠고, 큰맘먹고 질러버린 인터넷 면세점 물품들도 찾으러 가야 했다. 다행히도 수화물에 이상한 게 있다는 방송이나 연락은 오지 않았고, 면세 물품을 찾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게이트가 멀어서 힘들었을 뿐.
나름 국제선이라 그런지 기내식을 주더라. 비행시간도 얼마 되지 않다보니 이륙하자마자 밥을 나눠줬다.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익숙한 사람들은 맥주도 요청하고, 땅콩도 막 10봉지씩 받아서 냠냠하던데 소심덩어리인 나는 그냥 조용히 있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살다보면 평생 손해보며 사는 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이게 손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편안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억만금을 줘도 힘들 때가 있다. 모든 이익과 손해가 금전적으로만 환산되는 것은 절대 아니니까.
내리자마자 공항 창 밖으로 처음 본 풍경은 신선했다. 주차되어 있는 차들은 전부 와이퍼를 올려두고 있었고, 도로는 그냥 하얀색이었다. 어릴적 살던 동네에도 눈이 많이 왔었지만 그건 그냥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어디서 봤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오모리 지방이 세계적으로도 강설량 순위권이라고…
입국 절차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 히로사키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탔다. 실제로 아오모리 공항에 국제선이라곤 인천-아오모리 대한항공 노선뿐이라, 생각이 있다면 그 시간에 맞춰 버스가 있겠지 싶어 버스 시간을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았다. 막상 도착해보니 대부분은 공항으로 픽업을 나온 여행사측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걸로 봐선, 개인적으로 여행 오는 사람은 많이 없는 듯 싶었고 그래서 혹시나 버스가 없을까 걱정했지만 한 2-30분 정도 기다려서 출발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이었다. 가격은 1,000엔.
가는 길 내내 버스 창밖엔 일부 낮은 건물이나 구조물들을 제외하고는 눈, 산밖에 보이지 않았다. 만년설에 뒤덮인 거대한 산 하나가 계속 보였었다. 여기서 내 무식을 하나 실토하자면, 일본은 도로 운행 방향이 반대편인 걸 인지하지 못하고 창밖 풍경을 깔끔하게 봐야지! 하고선 오른쪽 좌석에 앉았다. 그 결과 확 트인 풍경 대신 지나다니는 소형차의 향연을 구경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한 50분 즈음 가니 히로사키역 앞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숙소는 그래도 미리 예약을 하는게 맞지 싶어서 예약해두었다. 예전에 부산으로 여행을 갔을 때 토요코인이라는 일본 비즈니스 호텔 체인을 이용했던 경험이 있고 깔끔하니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혹시 아오모리 지방에도 있나 찾아봤는데 있었다. 사실 일본 내에서는 없는 지역을 찾는게 더 빠를 정도로 큰 규모의 호텔체인이었다. 침대 두 개 있는 트윈타입을 하루 빌려서 세금 포함 6,669엔이었다. 갑자기 생각난건데, 일본은 편의점에서도 그렇고, 어딜 가서도 항상 물품 가격의 8%(맞나?)의 소비세를 별도로 지불해야 하더라. 그래서 미리 머릿속으로 계산한 게 소용없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라 넘나 번거로웠다.
기내식을 조금 깨작거렸을 뿐 제대로 점심을 먹지 못해서, 체크인 전에 편의점에 들러 도시락을 샀다. 한국에서도 편의점 도시락을 종종 애용하며 상당히 좋아하는 편인 나로서는 정말 신세계였다. 특히 튀김류와 라면은 정말 하나씩 다 먹어보고 싶게 생겼더라.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물론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대충 하나 집어들고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폭풍흡입했다. 꽤나 괜찮았다. 왠지 모르게 김혜자 선생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던건 덤.
히로사키시는 그리 큰 규모의 도시는 아니었다. 웬만한 관광지는 걸어서 다 다닐 수 있을 정도(물론 우리 기준이다)로, 밥을 간단히 먹었으니 소화도 시킬겸 구경도 할 겸 히로사키성까지 걸어가보기로 했다. 구글 지도로 찍어보니 도보 40분 정도로, 거리는 크게 멀지 않았다.
사진으로 봤을 땐 뭔가 엄청나게 거대한 성이거나, 그런 줄 알았다. 사실 이번 여행의 메인 컨텐츠가 아니다보니 그냥 대충 훑고, 여행 기분 내기 위해 들린 정도라 기대가 크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히로사키성 자체에 대한 이미지는 감탄보다는 실망에 가까웠다. 어쩌면 공사중이라 더욱 그랬을지도, 벚꽃이 없는 계절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성까지 가는 데 꽤나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지나야 했었는데, 온통 눈밭이라 평소 걸음걸이가 조심스럽지 않은 나는 엉덩방아를 한 번 찧었다. 얼마나 크게 넘어졌는지 내가 다 놀래서 다시 번떡 일어날 정도였다. 다행히 멍이 들거나 하진 않았었다.
게다가 한겨울이기에 해가 매우 빨리 저물었는데, 다섯 시 쯤 되니 주변에 가로등이 켜지고 깜깜했다. 성 자체에는 조금 실망스런 느낌을 안고 근처에 있다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히로사키 시청 근처에 위치한 스타벅스는 일본 최초로 일본 전통 건축물을 기반으로 오픈했다고 해서 한 번 들러봤다. 가는 길에는 히로사키 시청이 있었고, 퇴근시간과 맞물려 많은 현지인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눈이 많이 오는 도시라 그런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화를 신고 다녔다. 여행 내내 신은 신발만으로 어느 정도 외지인과 현지인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장화를 신는 비율이 높았다.
도착은 했는데, 안에 들어가서 음료를 마시거나 하진 않았다. 우선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고 뭔가 안 쪽의 느낌은 우리나라에서 평소 접했던 분위기가 아니라, 중세시대 프랑스의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를 가진 공주님 커피숍 같은 느낌이라, 수염 거뭇거뭇한 남자 둘이 들어가서 자리를 차지하기가 조금 미안했다. 그래서 밖에서 신나게 사진만 찍고, 제대로 된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저녁은 왕김밥을 먹기로 미리 정하고 왔는데, 일본어도 못하고 일본 문화와도 친하지 않은 나로서는 인터넷 보고 맛있겠다 싶어서 찾아간 것이니 밥집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어느 유명 여행 블로그의 포스팅을 참고하시는 것이 좋을 듯).
도시 자체가 워낙 시골(비하발언 아닙니다. 저 시골 좋아함) 느낌이라 해가 저물고 나니 길에 사람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다. 구글 지도를 보고 부지런히 걸어 도착하니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우리는 음식점에 들어가서도 주문을 어찌 해야 하나 어리둥절, 하고 있다가 블로그 포스팅을 보면서 한 글자 한 글자 비교해서 주문을 완료하는 기염을 토한다(…) 왕김밥 하나랑 모듬초밥으로 추정되는 것을 하나 시켰다.
진짜 크다. 이게 딜레마인게 한 입에 들어가긴 하는데 우겨넣는 수준이라 씹을 때 입주변 모든 근육이 땡기고, 나눠먹자니 내용물이 여기저기 튀어나와서 굉장히 추잡해진다. 난 계속 한입에 넣어서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초밥 가격은 기억이 안나는데, 왕김밥은 3,500엔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언뜻 생각하면 비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뭐 밥 한끼에 한국돈 5만원 정도 쏟아부은 것이니 크게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색다른 맛이었고 맛있었다.
주인으로 추정되는(?) 할아버지께서는 자꾸 일본어로 말을 거셨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는 우리는 오이시 오이시만 반복했다. 어줍짢은 맛있다는 말에도 활짝 웃으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할 정도. 일본어 좀 공부하고 갈 걸, 너무 아무런 준비 없이 갔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꿋꿋이 여행 마지막까지 제대로 된 일본어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불편하다면 불편한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걸어서 숙소로 복귀했다.
다시 숙소까지는 도보로 약 40분 거리. 춥기도 춥고 깜깜하기도 깜깜하고 사람이 없기도 없어서 무섭기도 무서웠다. 작은 도시임에도 꽤 큰 규모의 쇼핑센터가 여럿 있었고, (또 먹어야되니까) 소화도 시킬 겸 한 군데씩 들러봤다.
미적 감각이라곤 없지만 예뻐보이지는 않던 다양한 건물들을 지나치고 지나쳐 히로사키역 근처로 다시 돌아왔다. 아무래도 역 앞이고 하다 보니 여러 브랜드의 편의점이 있었는데, 제일 가까운 훼미리-마트에서 들어가서 각자 먹을 주전부리를 조금 샀다. 너무 추워서 사진은 찍어놓은 게 없구만.
평소에 워낙 라면을 좋아하던 나는 뭔가 생생함이 살아있는 라면을 하나 샀는데, 여기서 내가 두 번째 무식함의 극치를 뽐낸다. 평소 라면에는 뜨거운 물을 부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어찌나 강했던지, 숙소에 들어가 먹으려는데 뜨거운 물이 없어서 혼자 슬퍼하고 있는 걸 보고 같이 간 후배가 전자레인지에 데워다 주었다(…).
언뜻 겉으로 보기에는 데워서 국물이 나올 수 없게 생겼었는데… 역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해롭다. 1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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